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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쿨에 뿌린 건강한 삶을 위한 ‘씨앗’ --- 김석현
khimcs  2013-03-29 16:52:15, 조회 : 3,121, 추천 : 1254

이식쿨에 뿌린 건강한 삶을 위한 ‘씨앗’

경희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2학년 김석현

        ‘현지인 진료는 가능한데, 약은 가져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일부만 개인 짐에 조금씩 나누어 가져가 보려합니다. 개인 짐을 조금씩 가볍게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공항 만나기로 한 장소로 12시까지 나오십시오. 약을 다시 싸야합니다.’
        출국 전 날인 21일 단체 메일이 왔다. 출국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한국에서 진행된 ‘의료 봉사 미팅’에서 최악의 경우 키르키즈스탄에서 의료 봉사를 못하고 관광만 하고 올 수도 있다는 농담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단체 메일의 내용은 ‘그 농담’이 농담이 아닐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경희-국제 의료 협력회에서 9월부터 준비한 키르키즈스탄 의료 봉사는, 키르키즈스탄의 국내 사정 때문에 무산될 위기에 처할 뻔 했다. 2012년, 키르키즈스탄으로 의료 봉사를 간 사우디 아라비아의 봉사단은 10명의 심장 수술을 진행한 후 4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이 일로 해외 주관의 의료 봉사에 대한 키르키즈스탄 내 여론이 악화되었고, NGO 성격의 봉사 단체에도 정부 차원의 규제가 있게 되었다. 키르키즈스탄 정부 요구에 따라 작년 보다 많고 복잡한 서류를 준비했지만, 결국 출국 전날에 준비한 약에 대한 통관을 허락할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것이다. 덕분에 7박스에 달하는 약품을 준비하고 분류했던 우리는, 6박스에 달하는 약을 한국에 놓고 각자 캐리어에 나눠 담아 ‘몰래’ 키르키즈스탄에 입국하기에 이르렀다.

        우여곡절 끝에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인 비쉬켁(Bishkek)에 도착했지만, 우리를 반긴 것은 으슬으슬한 겨울비와 매캐한 공기, 그리고 군인들이었다. 공항에서 사진 찍는 것도 제지 당하기 일쑤 였고, 삼엄한 경비 속에 군복을 입은 심사관에게 입국 심사를 받았다. 사회주의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비쉬켁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봉사 예정 지역인 이식쿨로 이동했다.

        이식쿨은 키르키즈스탄의 대표적인 휴양지인데, ‘이식쿨 호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그 장경이 약 150km(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라고 한다. 경희-국제 의료 협력회에서 봉사를 진행할 병원은 이식쿨 시내에 위치한 종합 병원으로서, 이식쿨 주민들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건물이었다. 병원장의 환대를 받으며 건물 구석구석을 직접 소개받을 수 있었다. ‘주민들의 의료를 책임’지기에는 규모가 작다고 느껴졌다. 병원을 돌며 의료 봉사를 진행할 방을 과별로 정하고, 접수 창구와 약국을 정했다. 통역은 키르키즈스탄에서 한국어과에 재학 중이거나 한국에 관심이 많은 현지 대학생들이 자원 봉사 형식으로 도와주었다.
        여기서 키르키즈스탄의 의료 시스템에 관하여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 하다. 키르키즈스탄은 사회주의가 아직 만연한 국가로, 지식보다는 노동에 가치를 더 둔다. 그래서 의사의 월 평균 소득이 150~200 달러에 그친다고 한다. 의사는 진료에 대한 인센티브가 많지 않고, 진료비 역시 저렴한 편이므로 국민들은 의사의 진료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약은 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진료를 받아도 약을 구하기는 부담이 크다. 그래서 해외 봉사단이 오면 자신의 병에 대한 약을 받기 위해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날, 아침 아홉시 반부터 접수가 시작되었다. 의료 봉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접수 창구에서 환자를 간단히 문진하여 진료장에 Chief Complain을 기록하고 필요에 따라 혈압 및 체온을 측정한 후, 내과, 산부인과, 안과 중 주소에 맞는 진료실로 환자를 안내한다. 방송, 라디오를 통한 적극적인 홍보 덕분인지 환자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접수 창구는 바겐 세일을 하는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한 줄로 서야 한다는 한국 말은 이해될 리 없고, 통역 학생들의 부탁은 환자들에게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국민들의 질서 의식의 수준이 높은 편이 아닌데다가, 내원한 주민들은 이런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접수 창구는 아비규환이었다. 내과에 내원할 환자는 미리 혈압을 체크받아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고 가는 환자도 많았다.
        접수 창구를 통과해서 진료장을 받았다 하더라도, 진료실 앞에서도 오랜 대기 시간을 견뎌야 했다. 교수님들이 소화할 수 있는 환자의 양은 한계가 있어서, 대기 환자는 기하 급수적으로 쌓였다. 특히 안과의 경우, 돋보기 안경을 준다는 말이 퍼졌는지 대기 환자가 항상 40명 이상이었다. 산부인과의 경우 초음파 기계를 한국에서 가져갔는데, 진찰을 받고 싶어 하는 환자가 많아 시간이 갈수록 대기 환자가 오히려 늘어갔다. 내과는 고혈압, 당뇨 등 장기적으로 care가 필요한 환자가 대부분이었고, 증세 역시 기저 질환에 근거한 합병증으로 내원한 환자가 많았다. 추가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학생들이 준비한 손 씻기 교육과 양치질 교육도 진행했다. 간단한 위생 관리로도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에서 준비한 비누와 칫솔 등을 교육 수강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올바른 손 씻기 방법과 양치질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접수 창구, 내과 진료실, 안과 진료실이었다. 접수 창구에서는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침착히 주소를 묻고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했다. 진료실에서는 대기 환자를 순서대로 받고 교수님께 안내하는 일, 진료에 필요한 도움을 드리는 일, 그리고 진료 현장을 보고 경험하는 일을 했다. 내과 박종학 원장님(박종학 신경정신과 원장) 방에서 진료를 도와 드리면서 진찰법이나 문진 현장을 보았고, 안과 강병남 교수님(충주 건국대학교 병원 안과 교수) 방에서는 안과 진찰 방법, 필요한 환자에게 시행된 간단한 시술에 도움을 드리는 일을 했다. 자신의 병명을 알고 약을 타기 위해 오는 환자도 적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신의 안경 도수가 몇 디옵터인지 알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첫째 날은 신옥영 교수님(경희의료원 마취과 교수), 박종학 원장님께서 내과 환자 103명과 소아과 환자 18명, 최영준 교수님(경희의료원 산부인과 교수)께서 산부인과 환자 43명, 강병남 교수님께서 안과 환자 140명으로 총 304명의 환자를 진찰하셨다. 둘째 날은 키르키즈스탄에서 의사국가고시 합격 발표를 맞이한 장한나 선배님이 내과 진찰에 합류하여 내과 환자 155명과 소아과 환자 19명, 산부인과 환자 85명, 안과 환자 183명으로 총 442명의 환자가 내원하였다. 이틀에 걸친 환자군을 분석해보면, 40대 환자가 228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50대 환자는 222명으로 역시 환자가 다수 분포한 연령군이었다. 둘째 날은 더 일찍 시작해서 늦게 끝나기도 했고, 첫째 날 생긴 노하우 덕분에 접수 시간과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진행된 의료 봉사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은 환자는 총 746명의 환자였다. 한국에서 충분한 약을 가져오지 못한 관계로 예정된 3일의 봉사에서 긴급히 일정을 수정해서 이틀 밖에 진행할 수 없었다. 내원한 환자의 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는 키르키즈스탄의 이식쿨 지역 주민을 위해 교수님 및 의사 선배님들이 이틀 동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이틀에 걸친 봉사가 끝난 날, 병원 관계자 분들이 준비한 작은 파티에 참석했다. 키르키즈스탄에서 손님을 맞는 문화에 따라 준비한 푸짐한 음식과, 교수님부터 학생들에게 까지 수여된 감사장, 그리고 따뜻한 포옹은 정신없었던 봉사 일정의 노고를 잊기에 충분했다. 먼 이국에서 온 봉사단에게, 그리고 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현지 관계자에게 서로 감사를 표하는 모습은 참가자로서 큰 뿌듯함을 느끼게 해준 장면이었다. 병원에서 준비한 작은 파티가 끝나고 의료 봉사를 펼쳐주신 교수님과 선배님, 학생 신분으로 도움을 드렸던 선배 및 동기, 그리고 한국에 관심이 많은 키르키즈스탄 통역 학생들이 모여 간단한 음식과 함께 소감을 나누고 감동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짧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며칠 간의 추억은 서로에게 오랫동안 남게될 경험이었다. 물론 경희-국제 의료 협력회에서 진행한 봉사가 ‘의학적으로’ 환자 치료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주민들이 받은 도움의 양을 숫자로 알 수는 없지만, 키르키즈스탄과 이식쿨 지역 주민에게 건강에 대한 생각이 깃들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봉사가 끝난 후 비쉬켁으로 돌아와서는 비쉬켁에 위치한 의과대학과 키르키즈스탄 국립 병원에 방문했다. 키르키즈스탄의 건물들이 그렇듯 예전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시설은 낙후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국립 병원에는 순환기, 호흡기 등 4개의 과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50년 가까이 된 X-ray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고, 병실이 부족해 복도까지 침대를 놓고 환자를 관리하고 있었다. 건물은 지은지 오래된 탓인지 퀘퀘한 냄새가 진동했고, 점등도 충분히 하지 않아 수술이 끝난 환자들이 어두컴컴한 분위기에서 입원해 있었다. 그곳의 병원장은 경희-국제 의료 협력회에 거듭 지원을 부탁했고, 교수님 역시 가능한 지원에 대한 고려를 약속했다.
        이어 있었던 키르키즈스탄 한국 대사와의 오찬에서, 대사님은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국제적 협력이 나라 간의 외교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하며 크게 평가했다. 이번 봉사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알고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함을 느꼈다. 키르키즈스탄 복지부에서는 이번 의료 봉사에서 진료해 주신 교수님들을 초대하여 환대하기도 했다.

        입국부터 출국까지 동행하면서 우리를 도와준 자미르는 50대 중년의 남성인데, 봉사 마지막 날 알고보니 대통령 비서실에서 파견된 사람으로, 꽤 높은 자리에서 공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재치있어 봉사단 모두 감탄했지만, 그와 있었던 일화와 그의 인물평을 쓰기에는 이 소감문보다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생략하겠다. 그러나 자미르가 가진 키르키즈스탄의 의료 수준 발전에 대한 열망과 발전을 위해 그가 하는 노력은 생략할 수 없겠다. 자미르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났던 병원장 및 의사들, 정부 관계자 모두 그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만나는 이들마다 경희-국제 의료 협력회에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시작은 많은 난관에 부딪혔다. 심지어 시작을 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하지만 경희-국제 의료 협력회의 진심은 그들에게도 통했고, 우리가 의료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현지인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그 곳에 ‘건강한 삶’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전파할 수 있었다. 많은 약을 가져가지도 못했고,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동안 진행된 봉사이기에 지역 주민들에게 준 의학적인 도움의 크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서 서로가 주고 받은 감사를 보았고, 감동을 보았다. 이번 의료 봉사는 앞으로 경희-국제 의료 협력회와 키르키즈스탄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뿌리’가 될 것이고, 지역 주민들이 누리는 의료 수준 개선의 ‘씨앗’이 될 것이다. 나아가 ‘경희 의대’, 그리고 한국이 그들에게 오래도록, 흐뭇한 기억으로 간직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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